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북쪽으로 45km를 달리면, 바다를 마주한 고요한 도시 헬싱외르(Helsingør)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곳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진 크론보르 성이 자리한 곳이자, 과거 덴마크의 무역과 방어의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도시입니다. 외형상 소박한 항구 도시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수백 년의 역사와 문학, 바다와 예술이 어우러진 다층적인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여행자에게는 북유럽의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깊이를 체험하게 해주는 진정성 있는 공간으로 다가오는 헬싱외르. 바다와 성곽, 그리고 조용한 거리에서 느껴지는 고전적 정서는 도시 전체를 하나의 서사로 만들어냅니다.
소개: 전략적 요충지에서 문학적 상징으로, 헬싱외르의 정체성
헬싱외르는 셸란섬 북동단에 위치한 해안 도시로,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외레순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웨덴의 헬싱보리(Helsingborg)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중세 시기부터 이 지역은 북해와 발트해를 잇는 중요한 교역 통로로 주목받아 왔으며, 특히 15세기부터는 덴마크 왕실이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에 통행세를 부과하면서 헬싱외르는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16세기에 건설된 크론보르 성은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헬싱외르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이 도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성곽과 함께, 현대 예술과 해양문화가 융합된 문화 도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노르딕 건축 양식이 돋보이는 해양박물관, 활기를 띠는 구시가지의 거리 예술, 그리고 연중 열리는 공연과 축제는 헬싱외르를 과거의 유산을 품은 동시에 미래적 감각을 지닌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합니다. 작지만 강한 문화적 존재감을 지닌 이곳은 여행자에게 덴마크의 깊은 속살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명소: 헬싱외르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세 가지 대표 명소
헬싱외르의 가장 대표적인 명소는 크론보르 성(Kronborg Slot)입니다. 16세기 덴마크 국왕 프레데릭 2세가 건설한 이 성은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움과 군사적 실용성이 결합된 구조로, 햄릿의 엘시노어성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성 내부에는 왕실 예배당과 거대한 연회장, 그리고 햄릿의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리는 극장이 있으며, 지하에는 덴마크 전설 속 영웅 홀거 단스케(Holger Danske)의 석상이 잠들어 있는 신화적 공간도 존재합니다. 역사적 중후함과 문학적 상징성이 공존하는 이곳은 문화적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입니다. 두 번째 명소는 덴마크 해양박물관(M/S Maritime Museum of Denmark)입니다. 이 박물관은 크론보르 성 인근의 옛 조선소 부지에 건설된 지하 구조물로, 노르딕 디자인의 절정이라 평가받는 건축미가 돋보입니다. 전시는 덴마크의 해양 무역, 해군 역사, 선박 생활 등을 체험 중심의 방식으로 전달하며, 전시물뿐 아니라 전시 구성, 동선 설계까지도 예술적 감각이 느껴집니다. 특히 어린이와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도 유익하고 흥미로운 체험을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세 번째로 소개할 명소는 헬싱외르 구시가지(Helsingør Gamle By)입니다. 조용한 바다 마을의 분위기를 간직한 이 지역은 17~18세기 목조건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으며, 좁은 골목과 돌길, 그리고 전통 양식의 상점들이 어우러져 아늑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독립 서점과 수공예 상점, 카페와 미술관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거리 풍경은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헬싱외르의 감성을 그대로 느끼게 해 줍니다.
특별한 경험: 헬싱외르에서만 가능한 감성적 여행 체험 세 가지
첫 번째 특별한 체험은 크론보르 성 내 햄릿 공연 관람입니다. 여름 시즌이면 성 안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비롯한 여러 고전 희곡이 실제로 무대에 오르며, 관광객은 고풍스러운 성 내부에서 생생한 연극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연극의 무대이자 실제 역사적 공간인 성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무대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관객에게 몰입감 있는 예술 체험을 선사합니다. 두 번째는 헬싱외르-헬싱보리 간 페리 탑승 체험입니다. 약 20분간 운항되는 이 짧은 크루즈는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를 오가는 가장 고전적인 여행 방법으로, 양국의 문화를 동시에 체감할 수 있는 특별한 여정입니다. 해협 위에서 바라보는 크론보르 성과 해안 도시들의 전경은 엽서처럼 아름다우며, 두 도시 사이의 역사적 연결성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현지 어시장과 항구 거리 산책입니다. 헬싱외르 항구 인근에는 신선한 해산물과 지역 특산품을 파는 소규모 시장이 열리며, 현지인들과 섞여 바다의 일상을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항구 주변 카페에서는 신선한 생선 요리와 북유럽 특유의 브런치를 맛볼 수 있으며, 해풍을 맞으며 즐기는 식사는 헬싱외르에서만 가능한 소박하고 진정성 있는 경험입니다.
결론: 역사와 문화가 맞닿는 경계, 헬싱외르에서의 잊지 못할 여정
헬싱외르는 소리 높여 자신을 드러내는 도시는 아니지만, 그만큼 고요하게 깊이 있게 여행자의 마음을 파고드는 도시입니다. 크론보르 성의 성벽 아래서 과거의 왕국을 떠올리고, 햄릿의 독백을 들으며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에 잠기게 하며, 동시에 현대적인 문화 공간과 항구의 일상에서 살아 숨 쉬는 현재를 느끼게 해 줍니다. 덴마크가 가진 역사, 문학, 해양, 예술의 모든 요소가 하나의 도시에서 어우러지는 이곳은, ‘머무는’ 여행지로 기억될 것입니다. 하루의 일정으로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지만, 짧은 시간 속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도시. 헬싱외르는 북유럽 여행의 문을 여는 이상적인 출발점이자, 덴마크의 본질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무대입니다.